9월 중순에 공개한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는 삽시간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지배했습니다. 프로그램이 공개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응이 엄청나구나 싶고, 계급대결로 짜인 구도가 사람들의 도파민을 강렬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물론, 저의 도파민도 마지막화가 공개될 때까지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흑백요리사에는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안성재셰프는 국내 유일의 미슐랭 3 스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모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현재는 휴업 중).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는 셰프 중에도 파인다이닝을 지향하는 여러 명의 셰프가 있어 국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이다시 높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플TV의 다큐멘터리 '옴니보어:인간의 식탁'은 저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 파인다이닝 문화를 이끌었던 주역 중 한 명인 르네 레드제피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르네 레드제피는 현재는 문을 닫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노마'의 총괄 셰프였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우리입니다. 그건 제가 아는 가장 오래되고 진실한 공식입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어릴 때 마케도니아의 들판에서 딴 블랙베리입니다.
또한 젊은 요리사 시절 덴마크 해안가의 숲 속 바닥에서 수확한 산마늘입니다.
수천 년 동안 사회를 형성해 온 미네랄의 힘으로 움직이는 먼 파도 표면에서 건진 한 꼬집의 소금입니다.
이 모든 음식이 저를 코펜하겐의 제 식당, 노마로 이끌었습니다.
- '옴니보어' 1화 중 르네의 내레이션 -
르네의 말을 통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먹은 음식이 나를 구성한다는 것, 음식이 그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 상기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식사를 떠올려본다면 그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갖고 있던 것들이 재료가 되어 누군가의 손에서 음식으로 탈바꿈되고, 식사가 끝난 후 벌어지는 정리의 과정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음식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흡수, 불필요한 것은 몸 밖으로 배출합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나에게 필요한 것은 흡수하고 필요치 않은 것은 걸러내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결국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세상 그 자체’ 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참으로 세상을 맛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참으로 세상을 즐기고 있습니까?
참으로 맛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현재를 살기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이끌려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맛보지도 즐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참으로 즐기는 것은 방법만 안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다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죠.
유명한 요리사나 요리평론가는 아니지만 우리는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을 통해 음식을 제대로 맛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천천히 먹고 오감을 활용해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는 재료의 원형을 상상해 볼 수 있고, 그 재료를 길러낸 사람과 요리를 만든 사람의 노고에 고마워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 사람이 있다면 맛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마인드풀 이팅을 통해 몰입의 즐거움을 훈련한다면 세상을 참으로 즐기는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